20250725 | 토론토 중앙일보 종교칼럼 --- 며칠 전, 무척 더운 날이었다. 아침부터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었고, 공기에는 열기만 가득할 뿐 바람 한 점 없었다. 그런 날, 오래 미뤄두었던 울타리 정리를 시작했다. 튀어나온 가지들을 자르고, 키가 하늘에 닿을 듯 솟은 가지들을 골라 자르고, 잘라낸 가지들을 커다란 봉투에 담았다. 보기엔 간단해 보였지만, 막상 손을 대니 한 땀 한 땀 힘이 드는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배가 고팠다. 그저 출출한 정도가 아니라,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오는 간절한 허기였다. 피로도, 짜증도, 집중력 저하도 다 그 허기와 함께 밀려왔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급히 집 안으로 들어가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씹기도 전에 삼킬 정도로 급히 먹었고, 무엇을 먹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만큼 정신없이 먹었다. 허기를 채우자 정신이 돌아왔다. 다시 살아난 기분이었다. 그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몸이 이토록 허기질 때도 정신이 흐려지고 감정이 흔들리는데,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마음이 허기질 때는?’ 우리에게는 육체의 허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마음으로도, 영혼으로도 허기진다.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은 그 허기. 마음 어딘가가 텅 비어 늘 불안하고, 이유 없이 허전하며, 아무리 쉬어도 풀리지 않는 피로.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가시지 않는 외로움. 웃으며 일하고 돌아와도 침대에 눕자마자 밀려오는 공허함. 영혼의 허기이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처럼 무언가를 찾아 채우려 애쓴다. 밤새 넷플릭스를 보거나, 인터넷과 SNS 속을 떠돌며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본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사들이고, 음식이나 술로 그 허기를 채워보려 한다. 어떤 이는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매달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과로로 허기를 덮는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잠깐의 포만감일 뿐, 곧 다시 허기진다. 오히려 더 지치고, 더 공허해질 때가 많다. 자신을 '밥'이라 부른 이가 있다(요한복음 6:35). 바로 '예수'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생명의 떡이니." 이어지는 약속은 더 놀랍다.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참으로 놀라운 약속이다. 예수는 당신 자신의 배고픔이 아니라, 우리의 배고픔 때문에 자신을 '밥'이라고 부르셨다. 예수는 우리가 먹고 또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그 영혼의 허기, 세상의 떡으로는 도무지 메울 수 없는 그 공허함을 아셨다. '세상의 떡'으로는 도무지 채워질 수 없는 그 영혼의 허기를 위해 당신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내어주셨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단지 교회에 나간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를 먹는다는 건, 그분 안에 머물고, 그분의 사랑을 믿고, 그와 함께 살아간다는 뜻이다. 마치 밥을 먹듯, 매일 그의 사랑을 마음에 담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보나 자극이 아니라 한 끼 밥처럼 따뜻한 은혜의 경험이리라. 그때 비로소 허기가 멈춘다. 당신의 허기, 지금 어디에서 채우고 있는가? 지금 허기지다면, 그건 밥이 아닌, 생명의 떡이 필요하다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한 끼 밥이 몸을 살리듯, 예수는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양식'이 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