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9 | 토론토 중앙일보 종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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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미국 조지아주 현대-LG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한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는 9월 4일에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공장을 급습해 475명을 구금한 지 약 일주일 만의 일이다. 단속 당일, 헬리콥터와 장갑차가 동원되고, 공장 구역은 순식간에 봉쇄되었다고 한다. 마치 군사 작전 같은 현장에서, 그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한국에서 소식을 들은 가족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애가 탔을까.
한국 정부는 긴급히 영사를 파견하고 전세기를 투입했다. 법과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 재발 방지와 제도 개선까지 챙기겠다고 밝혔다. 다행히 건강에는 큰 이상이 없다고 하지만, 심리적 불안과 스트레스는 여전히 크다고 한다. 그럼에도 무사히 돌아온 그들을 떠올리면 그저 감사한 마음이 든다. 입국장에는 가족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 “돌아왔다!” 포옹과 눈물이 뒤섞인다. 긴장과 두려움, 불안과 기다림이 한순간에 녹아내리는 순간이다. 세상의 모든 소음과 혼란이 사라지고, 오직 안도와 사랑만이 공기를 가득 채운 듯했다.
누군가는 문제와 쟁점을 이야기하겠지만, 나는 316이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들이 대학 1학년 때, 기숙사에서 살고 싶다며 일 년 동안 지냈다. 어느 날 새벽, 전화벨이 울렸다. 신음 섞인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나 너무 아파. 지금 올 수 있어?” 아내와 나는 곧장 달려가, 침대에 쓰러진 아들을 차에 태워 집으로 데려왔다. 오는 내내 아들은 ‘나 죽을 것 같아’를 되풀이했다. 그날이 3월 16일이나, 새벽 3시 16분인 것은 아니었다.
숫자 316을 보며, 문득 성경 한 구절이 떠올랐다. 요한복음 3장 16절. 성경의 장과 절 숫자는 원본에는 없고, 독자가 읽기 쉽도록 나중에 덧붙인 것이다. 그러니 숫자 자체에 신비한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316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본다. 한국 정부가 전세기를 보내 근로자들을 데려온 것처럼, 아빠가 새벽에 아픈 아들을 집으로 데려온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직접 데리러 오시는 모습을 본다.
쉬운말성경은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이렇게 전한다. “진실로 그렇소.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셨소.”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을 알 수도, 찾아갈 수도 없다. 그러니 하나님이 직접 데리러 오실 수밖에 없다. 마치 전세기를 보내 데려오듯, 차에 태워 데려오듯,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직접 데리러 오신 것이다. 성경은 이어서 말한다. “누구든지 그 아들을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오.” 이보다 더 큰 위로, 더 기쁜 소식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구금되어 고생한 한인 근로자들이 무사히 돌아온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아픈 아들이 아버지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느낀 그 안도감이 또 얼마나 큰 위로인가. 스스로는 한 발짝도 내딛기 어려운 상황에서,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달려와 데려가 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 깊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신문에서 본 316이라는 숫자. 나는 요한복음 3장 16절과 연결해 생각해 본다. 하나님은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시고, 직접 찾아와 데려가 주시는 분이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를 바라신다. 그 사랑을 다시금 떠올리는 순간, 내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사로 가득 찬다.